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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왕도와 패도

by Hoʻo 2024.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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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도와 패도

 덕은 비록 지극하지 못하고 의로움도 비록 일을 잘 처리하기에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천하의 도리가 대략 여기에 모여 있고, 형벌을 내리고 상을 주는 기준이 천하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으며, 신하들은 분명히 그들의 임금이 약속을 지킬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정령이 공포된 뒤에 비록 이익으로 믿었던 일이 손해가 되는 것을 안다 해도 그의 백성들을 속이지 않으며, 맹약이 맺어지고 난 뒤에 비록 이익으로 여겼던 일이 손해가 되는 것을 안다 해도 그의 동맹국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군대는 강하고 성은 견고해져 적국이 그들을 두려워하고, 나라는 통일되어 그들의 기본 방향이 분명해지므로 동맹국들도 그들을 신임하여 비록 후미지고 좁은 나라라 할지라도 위세가 천하를 움직이게 된다. 오패가 그런 임금들이었다.
 정치와 교화에 근본을 두지 않고, 숭고한 예의를 존중하지 않으며, 문화와 도리를 기본 원리로 삼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은 따르게 하지 못하면서도, 오직 나라를 부강케 할 책략에만 마음을 쓰고, 일이 힘든지 쉬운지만을 따지며, 재물을 쌓는 일에만 힘쓰고, 군비를 잘 갖추어 딱 들어맞도록 위아래가 서로 신임하여 온 천하에 그들을 감당할 만한 상대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처럼 제나라 환공, 진나라 문공, 초나라 장왕, 오나라 합려, 월나라 구천은 모두가 후미지고 외진곳의 나라였으나, 위세는 천하를 움직이고 그들의 강함은 중원의 나라들을 위태롭게 하였다. 그 이유는 대체로 신임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신의만 인정받아도 패자가 된다는 것이다.
 온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공리를 중시하게 하고, 그의 의로움을 내세워 자신의 신의로써 일하는 데에 힘쓰지 않고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며, 안으로는 그의 백성들을 속이는 일을 꺼리지 않으면서 작은 이익을 추구하고, 밖으로는 그의 동맹국을 속이는 일을 꺼리지 않으면서 큰 이익을 추구하며, 안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땅과 재물을 바르게 정돈하지 않고 늘 남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만 욕심을 낸다. 그렇게 되면 곧 신하와 백성들도 속이려는 마음으로 그의 임금을 대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된다. 윗사람은 그의 아랫사람들을 속이고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을 속이게 되므로, 곧 위아래 사람들의 사이가 벌어진다. 그렇게 되면 적국이 그 나라를 가벼이 보고 동맹국은 그 나라를 의심하게 된다. 나라에는 권모만이 날로 행해지고 위태로움과 침략을 면할 수 없게 되어 궁극적으로는 망하게 될 것이다. 제나라 민왕과 설공이 그런 사람들이다.
 본디 그들은 강한 제나라를 예의를 닦는 방법으로 다스리지 않고 정치와 교화를 근본으로 삼는 방법으로 다스리지 않았으며, 천하를 통일하는 방법을 쓰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언제나 유세자를 내세워 수레를 몰고 밖의 나라를 돌아다니게 하는 술수에만 힘썼다. 
 나라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그릇이요 무거운 짐이니, 위치를 잘 가린 다음 그것을 놓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험난한 곳에 놓아두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길을 잘 가린 다음 그 길을 따라 정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길이 지저분하면 막혀 버리게 되고, 위태롭게 막히면 나라는 망한다. 
 나라를 잘 놓아둔다는 것은 국경을 분명히 하여 나라 땅을 차지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법도로 정치를 행하고, 어떤 사람과 더불어 정치를 하는가를 뜻한다. 그러므로 왕자의 법도로 정치를 행하고, 왕자에 어울리는 사람과 더불어 정치를 행하면 바로 왕자가 된다. 패자의 법도로 정치를 행하고, 패자에 어울리는 사람과 더불어 정치를 행하면 바로 패자가 된다. 나라를 망치는 법도로 정치를 행하고, 나라를 망치는 사람들과 더불어 정치를 행하면, 바로 나라가 망한다. 이 세 가지는 명철한 임금이라면 신중히 가려 쓰는 방법이며, 어진 사람이라면 분명히 힘써야 할 일이다.
 나라에 예의가 없으면 바르게 다스려지지 않으니, 예라는 것은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는 근본이다. 그것은 마치 저울이 무겁고 가벼운 것을 가늠하는 근본이 되고, 먹줄이 곧고 굽은 것을 가늠하는 근본이 되며, 그림쇠와 굽은 자가 네모와 동그라미를 가늠하는 근본이 되는 것과 같다. 이미 그런 근본이 놓여있으니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것을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다스리는 법이 없는 나라도 없지만 어지럽히는 법이 없는 나라도 없으며, 현명한 선비가 없는 나라도 없지만 무능한 선비가 없는 나라도 없으며, 성실한 백성이 없는 나라도 없지만 흉악한 백성이 없는 나라도 없으며, 아름다운 풍속이 없는 나라도 없지만 악한 풍속이 없는 나라도 없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존재하고 있으면 나라가 존속하고, 앞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나라가 편안히 존속하고, 뒤쪽으로 치우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앞쪽의 한편만 있으면 왕자가 되고, 뒤쪽의 한편만 있으면 망하고 만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법은 잘 다스려지고, 그 신하는 현명하고, 그 백성은 성실하고, 그 풍속은 아름다워서, 이 네 가지 것이 갖추어진 것, 이것을 두고 앞쪽의 한편만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2. 감상

 덕과 의리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덕과 의리가 없다면 사람들이 혼란스러워지고 서로 믿음이 없어서 모이지 않는다는 말이 좋다. 의리가 없다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언제 나의 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법이다. 주변인보다 본인의 이익을 더 우선시할 것 같다는 선입견마저 생긴다. 
 나라를 잘 놓아두기 위해서는 사람을 잘 두어야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잘 나아가기 위해서는 혼자서 하기엔 힘이 든다. 마음이 잘 맞고 올바른 사람들과 함께해야 뱡향이 비뚤어지지 않고 원하는 목적지에 잘 도착하는 것이다.
 예의가 모든 것의 근본이자 기준이라는 말은 유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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