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상은 정확하지 않다.
사람의 관상을 보는 일은 옛사람들에게도 없었고 학자들도 얘기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고포자경이란 이가 있었고, 현재에는 양나라에 당거란 이가 있어서, 사람의 형상과 안색을 보고서 그의 길흉과 화복을 알아낸다고 한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칭송하지만, 옛사람들에게도 없었고 학자들도 얘기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형상을 보는 것은 마음을 논하는 것만 못하고, 마음을 논하는 것은 행동 규범을 잘 가리는 것만 못하다. 형상은 마음만은 못하고, 마음은 행동 규범만은 못하다. 행동 규범이 바르면 마음은 이에 따르는 것이니, 형상이 비록 나쁘다 하더라도 마음과 행동 규범만 훌륭하다면 군자가 되는 데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다. 형상이 비록 훌륭하다 하더라도 마음과 행동 규범이 나쁘면 소인이 되는 데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다. 군자는 길하다 했고 소인은 흉하다 했으니, 길고 짧고 작고 크고 훌륭하고 나쁜 형상이 길하고 흉한 것은 아니다. 관상은 옛사람에게도 없었고 학자들도 얘기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에게는 상서롭지 못한 세 가지 조건이 있다. 나이가 어리면서도 어른을 섬기려 하지 않는 것과, 신분이 천하면서도 높은 사람을 섬기려 하지 않는 것과, 어리석으면서도 현명한 사람을 섬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의 상서롭지 못한 세 가지 조건이다.
사람에게는 반드시 곤궁해지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윗사람이 되어서는 아랫사람을 아낄 줄 모르고, 아랫사람이 되어서는 그의 윗사람을 비난하기 좋아하는 것이 사람들이 반드시 곤궁해지는 첫째 조건이다. 남을 대할 때는 종순하지 않고 남을 등지면 그를 함부로 업신여기는 것이 사람들이 반드시 곤궁해지는 둘째 조건이다. 지혜와 행실은 천박하고 굽고 바른 정도는 남보다 훨씬 못한데도 어진 사람을 받들 줄 모르고, 지혜 있는 선비를 존경할 줄 모르는 것이 사람들이 반드시 곤궁해지는 셋째 조건이다.
사람으로서 이상과 같은 몇 가지 행실이 있는 자는 윗자리에 앉으면 반드시 위험할 것이고, 아랫자리에 있으면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시경]에 “눈이 펑펑 내리지만 햇빛만 보면 녹네. 겸손히 남을 따르려 하지 않고 늘 교만하게만 구네. “라고 읊은 것은, 이것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을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사람에게는 분별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굶주리면 먹을 것을 바라고, 추우면 따스한 것을 바라며, 수고로우면 쉬기를 바라고,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외부의 영향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며, 성왕인 우임금이나 폭군인 걸왕이 모두 같다.
그러니 사람을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이 두 다리를 가지고 있고 털이 나지 않은 동물이라는 특징이 아니라 분별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성성이의 모양을 보면 역시 두 다리에 털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군자들은 그 고기로 만든 국을 마시고 그 고기를 썰어 먹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이 두 다리를 가지고 있고 털이 나지 않은 동물이라는 특징이 아니라 분별이 있다는 것이다. 새나 짐승에게도 아비와 아들은 있지만 아비와 아들 사이의 친밀한 윤리는 없으며, 암컷과 수컷이 있기는 하지만 남자와 여자를 분별하는 윤리는 없다. 그러므로 사람으로서의 도에는 어디에나 분별이 있다는 것이다.
분별에는 분수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분수에는 예의보다 더 큰 것이 없으며, 예의에는 성왕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그런데 성왕이란 백 명도 넘는데, 우리는 누구를 법도로 삼아야 할 것인가? 문물은 오래되면 없어지고, 음악의 절주는 오래가면 소멸하며, 법도를 지키는 관리들도 오래 예법을 추구하다 보면 지쳐서 해이해진다.
그러므로 성왕의 발자취를 보려 한다면 그 분명한 것을 보아야 할 것인데, 후세 임금이 바로 그분이다. 후세 임금이야말로 천하의 임금이다. 후세 임금을 버리고 옛날을 얘기하는 것은 마치 자기의 임금은 버리고 남의 나라 임금을 섬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천 년 전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오늘 일부터 잘 살펴야 하며, 억만 가지 일을 알고자 한다면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일부터 살펴야 한다. 옛날 세상일을 알고자 한다면 주나라의 도부터 살펴야 하며, 주나라의 도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주나라 사람들이 존귀하게 여기는 군자에 대해 잘 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가까운 것을 바탕으로 하여 먼 것을 알고, 한 가지를 바탕으로 하여 만 가지를 알며, 작은 것을 바탕으로 하여 큰 것도 알게 된다. “고 하는 것이다.
무슨 이론이든 옛 임금들의 가르침과 맞지 않고 예의를 따르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을 간사한 이론이라 한다. 비록 말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군자들은 듣지를 않는다.
옛 임금들을 법도로 삼고 예의를 따르며 공부하는 사람을 잘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이론을 좋아하지 않고 말하기를 즐기지 않는다면 절대로 성실한 선비는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의 뜻으로 이론을 좋아하고, 행동은 그로 말미암아 편안하며, 그것을 말하는 것을 즐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말을 잘한다.
사람들은 그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일을 말하기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지만, 군자는 그 경향이 더욱 심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이론을 선물하면 금이나 보석이나 진주나 옥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고, 사람들에게 이론을 보여주면 보불무늬나 아름다운 무늬보다도 더 아름답게 여기고, 사람들에게 이론을 들려주면 종과 북이나 거문고와 가야금을 연주하는 것보다도 더 즐기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론에 대해 싫증 내는 일이 없다.
천한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사물의 실질만을 좋아하고 그 무늬인 이론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평생토록 비루하고 범속함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경]에 “자루의 입을 묶은 듯이 입 다물고 있으면 허물도 없으려니와 영예로운 일도 없다.” 하였는데, 썩어빠진 학자들을 두고 말한 것이다.
2. 감상
마음보다 행동 규범을 중요시하는 것이 조금 의아하다. 마음이 바르면 의도하지 않아도 모든 행동이 규범에 맞아진다고 여기는 거 아니었나?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사람 사이의 분별도 필요하겠지만 옳고 그름의 분별을 가지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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